ABOUT HOH (STORY VERSION)
Posted 2008/02/27 22:47, Filed under: ABOUT미국에 유학중이던 1995년 겨울, 인터뷰를 통해, 이듬해 여름, 저는 원래 버슨-마스텔러(Burson-Marsteller) 한국 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게 되어있었습니다. PR회사에서의 첫 인턴이라 손꼽아 기다렸는데, 인턴 시작 한 달을 남겨두고, 버스-마스텔러 한국사무소와 메리트 커뮤니케이션즈가 합병을 하면서 제 인턴 자리가 갑자기 없어져버렸습니다. 버슨-마스텔러에서 저를 인터뷰했던 임원분이 미안했는지, 저를 소개해주어 찾아간 곳이 당시 한국에 처음 문을 연 에델만이었습니다. (당시, 갈 곳없는 저에게 인턴 기회를 주셨던 분이 또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 사장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프린트가 되는 컴퓨터가 각각 한 대씩 있었던 사무실에서 제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한 과자회사의 위기 관리 프로젝트에서 전화 받는 보조 역할을 하면서, 제 커리어의 큰 축이 결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턴 생활을 마치고, 위기관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97년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들어간 곳이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이었습니다. 이 곳을 지원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된 <위기관리 PR 커뮤니케이션>을 지은 Kathleen Fearn-Banks 교수 때문이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 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닥쳤습니다. 미국에 도착할 때 750원이었던 환율은 불과 2년 만에 1600원을 훌쩍 뛰어 넘을 때였습니다. 책으로만 보던 PR을 '하고' 싶다는 갈증도 있던 차에, 환율까지 이렇게 되자, 1년간 휴학을 하겠다고 이야기하고는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돌아가지 않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 때, 저를 받아준 곳이 에델만이었습니다. 직원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1년이 채 안되던 열악한 시절,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3년 반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인하우스 PR팀으로 옮겼습니다. 한국 MSD입니다. 위기와는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신입 사원 교육을 받다가 호출을 받고 불려나가, 그 곳에 있던 내내 기업 소송 및 각종 위기 사건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짧지만, 제게는 참 좋은 사람들과 경험을 준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헬스케어에 대한 짧지만, 집중적인 경험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한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에델만이 아태지역에서 구조조정을 하며, 새로운 인물들을 뽑고 있었습니다. 에델만의 옛 동료들을 모아 한국에 사장으로 부임한 Bob Pickard 사장을 파티에 초대했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사장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다시 돌아간 에델만은 힘이 많이 빠져있었습니다. 직원은 15명 정도였고, 에델만 전세계에서 꼴찌에 상당히 근접해있었습니다. 고3 때도 밤을 세워본 적이 없는 제가, 이 기간에는 사무실에서 밤을 세워본 적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고생은 많았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리워하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취가 많았던 시절이었지요.
2002년 12월 부사장으로 들어가 두 가지의 프랙티스를 만들었습니다. 하나가 위기관리이고, 또 하나는 헬스케어였습니다. 우수한 직원과 동료, 그리고 고마운 고객분들 덕분에 두 가지 프랙티스 모두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헬스케어 비즈니스는 불과 2년만에 아태지역 최대 규모로 성장했고, 에델만 본사에서 사장급으로 HET(Health Executive Team)을 구성할 때, 아태지역 대표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2003년 아태지역에서 공동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싱가폴에 갔을 때, 제가 좋아하는 미국인 선배 컨설턴트와 단 둘이 맥주를 마시다가, 코칭의 세계에 눈을 뜨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역시 위기관리 전문 컨설턴트였는데, 어느새 우리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는 "컨설팅회사가 고객을 위해 전부 만들어주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컨설턴트는 고객이 직접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위기관리 프로세스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역할이야..."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부터, 위기관리에 코칭이라는 접근 방식을 더해, 각종 워크샵을 디자인하고, 만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많은 고객분들이 함께해주셨고, 그 분들과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아 갔습니다. 특히, 제 위기관리 고객분들은 여러번에 걸쳐 불러주시고, 추천도 많이 해주셔서, 덕분에 좋은 클라이언트 분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가 직접 실행하는 위기관리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을 위기 예방 차원에서 할 수 있었다는 점을 큰 의미로 갖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주로, 위기 예방 차원의 워크샵을 디자인하고, 진행(facilitation)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04년 8월 전임자였던 밥 피커드 사장이 북아시아 사장으로 진급을 하면서, 저는 에델만 코리아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사장으로 보낸 첫 회계년도(2004년 7월~2005년 6월)에 에델만 코리아는 진출 사상 최고의 매출 기록을 세워, 그 해 에델만 전세계 네트워크 중 최고 오피스상(Office of the Year)을 수상했고, 제가 에델만 대표를 떠날 때까지 세 번의 회계년도를 거치며, 연속 매출 최고 기록을 새롭게 세워나갔습니다. 최고의 동료직원들과 함께 한 성공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성공속에서 Web 2.0이 가져오는 PR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연구 욕심, 40대로 진입하는 개인으로서, 향후 10년에 대한 구상, 언젠가부터 가지고 싶었던 하프타임(휴식기간)을 가지려는 욕구등으로,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자세한 이야기는 <에델만의 새로운 출발, 그리고 나의 새로운 출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6월 더랩에이치를 설립해놓고, 반년 동안의 하프타임을 가졌습니다. 주로 미국을 오가며, Web 2.0이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가져오는 영향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구도 하고, 새로운 40대를 계획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08년부터는 주식회사 김호더래버러토리(줄여서 '더랩에이치'라고 부릅니다)라는 법인 회사를 설립, 본격적으로 고객사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CEO, 임원, 의사 등을 대상으로 한 위기관리와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2월부터는 KAIST의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에서 Digital Storytelling and Cognition Lab 소속으로, 위기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뇌과학(Brain Science)을 연결짓는 연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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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블로그: hohkim.com (Hoh Kim's Lab: Consiliencing Communication)













